통일신라 시대의 인물입니다.


종남산 자오곡에서 수행했다고 합니다.

종리권에게 도를 배웠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배운 사람들로 자혜와 최승우란 인물이 있었습니다.


 자혜와 최승우는 신라로 귀국했지만, 김가기는 귀국후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도법을 최치원에게 전수하고 갔다고 전합니다.



최치원과 만났다는 부분은 상당히 어색합니다. 

최치원의 생몰년대와 김가기의 생몰년대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지요.


무튼 약간 전설적으로 윤색된 점이 있는데, 

김가기 라는 인물 자체는 진실로 보입니다.

사적비까지 발견되었으니까요.



참고

김가기 - 위키백과

신라 김가기 사적비 중국서 발견 - 중앙일보

신선ㆍ도인 이야기 : -海東편- 김가기(?∼859) - 대순회보

통일신라시대의도교사상 - 위키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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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서 후궁의 다툼을 보고 세속의 환멸을 느껴

24세에 중국으로 건너간 신라의 왕족.


당나라에서 출가하여 교각(喬覺)이라는 법명을 얻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후 3년후에도 썩지 않으면 등신불로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등신불 위치 : 중국 안휘성 청양현 구화산 


등신불은 육신보전이라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구도 수행을 했던 암자에는 등신불이 아니라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참고

김교각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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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크리슈나(Ramakrishna, 1836년~1886년)는 인도의 신비주의적 종교가이다. 

 캘커타 교외의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사원(寺院)의 간부 승이 되어 칼리 여신을 숭배하였다. 너무 열심히 순수하게 숭배했기 때문에 때때로 기도에 열중할 때 삼매(三昧)의 경지에 도달하는 수가 있었는데 후에 숲 속에 들어가 12년 동안의 고행을 하여 신비적 체험을 쌓았다. 

 명상·고행을 중시하는 열렬한 비슈누파 교도였으나 이슬람교·기독교 등 각 종교에 대한 이해도 깊었으며 종교 진리는 결국 각 종교의 구별을 초월한 곳에 귀결한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끝내 모든 세속적 생활을 이탈한 학문과 덕이 함께 높다고 하는 파라마한사의 존칭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는 학문에 통달한 것은 아니었으나 샹카라의 베단타 사상에 입각하여 합리주의의 지적 태도로서가 아니라 내발적(內發的)인 열정으로써 설법했기 때문에 많은 공명자를 얻기에 이르렀다.



라마 크리슈나는 인도의 3대 성자 중 한 사람이다.

(인도의 3대 성자는 붓다, 상카라, 라마크리슈나이다.)


그의 주요 수행 방식은 헌신이었다.

헌신. 기도. 명상.


그리고 하나의 종교를 넘어

다양한 종교에 대해 깊이 체험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참고

라마크리슈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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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에크하르트(Johannes Eckhart, 1260년경-1327년)는 독일의 로마 가톨릭 신비사상가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마이스터 엑카르트라고 통칭된다.



그리스도교이지만, 불교적인 그리스도교 같은 묘한 느낌이 있다.

허공의 하느님을 이야기하는 비범한 인물이다.


에크하르트는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연결하는 지점에 

서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논하는 하느님의 개념은 불교의 공사상과 많이 닿아있다.


그가 외도인 것일까?


그렇게 보긴 어렵지 않을까.


세상을 깨우는 자의 소리와

세상에 어둠을 외치는 자의 소리는

다르다.


대표적인 제자로 

요하네스 타울러 Johannes Tauker 1300~61

하인리히 조이제 Heinrich Seuse 1300~65

가 있다.


참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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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베들레헴 출신이자, 나자렛 마을 사람-마리아와 요셉이 나자렛 출신-이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둘 다 간직하였고, 그렇기에 따를 수 있는 모범이 된다.

만일 예수님이 순수한 신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 

우리는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4복음서

4복음서는 예수님의 삶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다.

4복음서 중에 가장 신뢰할만한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라고 본다.

루카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를 참고하면서 그 내용을 편집하고 변경했다.

같은 이야기라도 마르코 복음서의 내용과 루카 복음서, 마태오 복음서가 조금씩 다르다.

마르코 복음서가 가장 초기에 만들어진 복음서인 만큼 진실성의 수준도 높다고 본다.


크리스마스

정확히 이 날짜가 예수님의 탄생일은 아니다. 로마에서 태양신을 기리는 축제가 12월 25일에 열렸는데, 태양신 신앙이 쇠퇴하고, 그리스도교가 힘을 받으면서 점차적으로 태양신이 축소되고 그리스도교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로 믿음을 가지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련지 모르겠다.


믿는자에게는 믿음의 표징이 있다.

예수님은 사랑에 대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였다.

그리고 믿음을 끝없이 강조하셨다.




참고

나자렛예수-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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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비르(영어: Kabir, 힌두어: कबीर, 펀자브어: ਕਬੀਰ, 우루두어: کبير‎, 1440∼1518)는 인도의 철학자, 성자, 시인이다. 원래 비나레스 브라만 계급의 한 과부의 아들이었으나 길거리에 버려진 것을 이슬람 교도의 방직공 부부가 양육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비슈누파의 수행자(修行者) 라마난다를 사사(師事)한 뒤부터 유일절대신(唯一絶對神)인 라마(Rama), 즉 범(梵)에 대한 신애(信愛)를 통한 해탈을 주장하였다. 그 설은 힌두교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이슬람 교도에 대해서까지 똑같은 해탈을 주장하여 이슬람교·힌두교의 차이를 초월하는 것이 되었다.


예컨대 우상 숭배나 고행, 카스트를 부인하고 일신숭배 등의 이슬람교(특히 수피파)적인 영향을 많이 볼 수 있다. 카비르 자신이 방직공으로서의 세속적인 직업을 가졌으며, 더구나 힌디의 속어(俗語)로 설법했기 때문에 그 가르침은 널리 번져 이윽고 이슬람교의 시칸다르 로디왕(王)과 대립, 여러 나라를 방황한 끝에 죽었다.


그의 작품들은 박티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 가라, 가고싶은 대로 가 보라.

베니레스로 마투라로,

그러나 그대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세계 전체가

환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형제여, 사랑한느 형제여

<빈 것>이야말로 진리의 심장부이다.



출처

카비르 - 위키백과


참고

카비르와 나나크의 박티운동

박티운동과 수피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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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유영모는 기독교계에서 추앙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특징은 우리말로 철학하기에 있다.


또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는데

정식으로 졸업증을 써준 사람은 박영호씨 한명 뿐이지만

그외에 김흥호 목사, 험석헌, 임락경, 이현필등을 가르쳤다.



만년에 구기동 저택을 거니는 다석 유영모



참조

다석 유영모 - 위키백과

류기종의 영성강좌 - 다석 류영모 - 당당뉴스

다석아카데미

다석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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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몬드 투투






1984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인물이다.


최근에 <Joy 기쁨의 발견> 이라는 책을

달라이 라마와 함께 합작하여 출판했다.


인종차별문제로 남아프리카가 고심할 때

진실과 화해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과거 청산을 위해

힘쓰셨다. 이때의 일들은 <용서없이 미래없다>라는 저서에 나와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분들이 많아져서 깔끔하게 과거 청산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달라이 라마와 투투 대주교님.

두 분 다 에너지장을 보았을 때, 영적 성취를 이루신 분들이다.


참고


달라이 라마와 데스몬드 투투의 대화 - 전성기뉴스

달라이라마의 에너지장

데스몬드 투투의 에너지장

위키: 데즈먼드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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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나 마하르시' (Ramana Maharshi, 타밀어: ரமண மகரிஷி1879년 12월 30일 ~ 1950년 4월 14일) 또는 라마나 마하리쉬(Ramana Maharish)는 인도의 힌두 철학자이다.

'큰스승'(大師), '바가반', '아루나찰라의 현인'이라고 불리며 비이원론(Advaita, Non-Duality)과 마야에 대하여 샹카라와 같은 견해를 가졌는데, 이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침묵으로 영향을 주었으며 진리를 찾는 방법으로 '비차라(Vichara, Self-enquiry : 진아 탐구)를 권하였다.

인도 남부 마드라스 마두라이의 중류층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나 신비주의와 종교에 관한 서적, 특히 인도 남부의 시바파 성자들의 전기와 중세의 신비주의 시인인 카비르의 전기를 읽었다. 그는 세계가 창조될 때 시바 신이 오늘날 순례자들의 성지가 되어 있는 아루나찰라 산의 불기둥 속에서 솟아나왔다는 전설을 듣고, 아루나찰라 산에 마음을 빼앗겼다. 17세 때 갑자기 죽음의 공포를 심하게 느끼고, 가만히 드러누운 채 몸이 딱딱하고 차가운 시체로 변해가고 있다고 상상했다. 그는 처음에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neti-neti)라는 전통적 수행법에 따라 자아탐구를 시작했다. 그는 "나는 누구냐?"고 스스로 묻고 "나는 육체가 아니다. 육체는 결국은 썩어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도 아니다. 두뇌는 육체와 함께 썩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격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다. 인격과 감정도 역시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고 깊은 의문을 가졌다. 그 깊은 자아에의 탐구는 그를 초월하는 의식상태로 이끌었는데, 희열을 느끼는 이 상태를 힌두 철학에서는 '사마디'(samādhi) 즉 삼매(三昧)라고 부른다. 그는 이후 고향 마을을 떠나 아루나찰라 산으로 가서 수행자가 되었으며, 그 후 인도에서 가장 젊은 구루의 한 사람이 되었다.

라마나 마하르쉬에게 크게 감명받은 영국인 폴 브런턴이 〈인도의 신비를 찾아서 My Search in Secret India라는 책을 발간하자,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이 라마나 마하리쉬의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방문하였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죽음과 악은 '비차라'로 쫓아 버릴 수 있는 환상일 뿐이며, '비차라'를 실천하면 참된 자아인 진아(Atman, True Self)를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되풀이되는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비차라'를 실천하거나 박티(헌신과 신애)를 실천하면 된다고 하였으며 이 두가지가 같은 결과로 이끄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하였다.


**


가장 강조한 수행법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수행법으로

마치 소에게 여물을 내밀어 이끌고 가듯이

수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


명상가로서 진실하고 깊은 수준에 도달했던

침묵의 성자 라마나 마하르쉬.


그의 사상과 정취를 느끼는데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라마나_마하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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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암스님은 조선조 5백년 역사의 막이 서서히 내려지던 1885년 12월 1일 황해도 백천군 해월면 해암리에서 최사홍(崔四弘)과 전주 이(李)씨의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속명은 순천(順天).

  11세 때인 1895년 부친상을 당해 이듬해 출가(出家)를 결행, 경기도 양주군 수락산 흥국사(興國寺)에서 삭발한 이래 줄곧 수행에 전념해왔다.

  16세 때인 1900년 이보암(李保庵)스님을 은사로, 표금운(表錦雲)스님을 계사(戒師)로 득도하고, 27세 때인 1911년 서해담(徐海曇)스님을 계사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성월(性月)스님 회상(會上)에서 정진하며 화두(話頭)를 간택받았다. 

  그 뒤 만공(滿空), 혜월(彗月), 용성(龍城)스님 등 당시 선지식들을 모시고 용맹정진, 근 6년의 운수행각(雲水行脚)과 좌선(坐禪)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그가 부른 깨달음의 노래는 다음과 같다.

  語默動靜句 箇中誰敢着
  問我動靜離 卽破器相從

  이를 자유로운 해석으로 우리글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어묵동정' 한마디 글귀를 누가 감히 손댈 것인가. 내게 말도 침묵도 움직임도 움직이지 않음도 여의고, 한마디 이르라면 곧 「깨진 그릇은 서로 맞추지 못한다」고 하리라.』
  이무렵 스님은 묘향산 상원사(上院寺) 주지와 강원도 정선군 정암사(정암사)주지를 잠깐씩 역임하기도 했으며 45세 때인 1929년, 당시 수덕사 조실(祖室) 만공(滿空)스님으로부터 전법게(傳法偈)와 혜암(惠菴)이란 법호를 받고 법통을 이었다.

  만공스님이 내린 전법게는 


구름과 산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고
또한 대가(大家)의 가풍(家風)도 없구나
이와 같은 글자 없는 인(印)을
혜암 너에게 주노라.

  雲山無同別
  亦無大家風
  如是無文印
  分付惠菴汝


만공스님의 인가

 덕숭총림 초대 방장 혜암현문(慧庵玄門, 1884∼1985)스님은 1929년 만공스님으로부터 전법을 받은 뒤에도 무섭도록 철저한 정진을 했던 선지식이다. 1943년 만공스님과 간월도로 가는 배 위에서 나눈 법담은 유명하다. 그 자리에서 만공스님은 혜암스님에게 “저 산이 가는가? 이 배가 가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혜암스님은 “산이 가는 것도 아니고 배가 가는 것도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만공스님이 “그러면 무엇이 가는가”라고 묻자 손수건을 말없이 들어 보였다. 이에 만공은 ”자네 살림살이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라며 인가해 주었다고 한다. 혜암스님은 1956년 세수 72세 때 수덕사 조실로 추대돼 덕숭산에 주석하며 30년 동안 후학을 양성했다. 한국 전통선의 진수를 전하기 위해 1984년 10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국 서부 능인선원 봉불식에 참석해 한국불교를 미국에 전파하는데 앞장섰다.



만공스님은 일제시대 때에 간월도로 가서

우리나라의 민족해방과 자주독립을 위한 천일기도를 입재했습니다. 

아마 그곳에 갈무렵으로 보이네요.


 


참고

혜암선사-행장

혜암현문

혜암스님의 에너지장

만공스님의 천일기도


저서

<생사해탈의 관문 선문촬요>

<바다 밑의 진흙소 달을 물고 뛰네> 법어집

달마대사 혈맥론(e뭣고 선어록총서 1)

달마대사 관심론(e뭣고 선어록총서 2)

보조국사 수심결(e뭣고 선어록총서 3)

보조국사 진심직설(e뭣고 선어록총서 4)

선경어(e뭣고 선어록총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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