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나 마하르시' (Ramana Maharshi, 타밀어: ரமண மகரிஷி1879년 12월 30일 ~ 1950년 4월 14일) 또는 라마나 마하리쉬(Ramana Maharish)는 인도의 힌두 철학자이다.

'큰스승'(大師), '바가반', '아루나찰라의 현인'이라고 불리며 비이원론(Advaita, Non-Duality)과 마야에 대하여 샹카라와 같은 견해를 가졌는데, 이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침묵으로 영향을 주었으며 진리를 찾는 방법으로 '비차라(Vichara, Self-enquiry : 진아 탐구)를 권하였다.

인도 남부 마드라스 마두라이의 중류층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나 신비주의와 종교에 관한 서적, 특히 인도 남부의 시바파 성자들의 전기와 중세의 신비주의 시인인 카비르의 전기를 읽었다. 그는 세계가 창조될 때 시바 신이 오늘날 순례자들의 성지가 되어 있는 아루나찰라 산의 불기둥 속에서 솟아나왔다는 전설을 듣고, 아루나찰라 산에 마음을 빼앗겼다. 17세 때 갑자기 죽음의 공포를 심하게 느끼고, 가만히 드러누운 채 몸이 딱딱하고 차가운 시체로 변해가고 있다고 상상했다. 그는 처음에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neti-neti)라는 전통적 수행법에 따라 자아탐구를 시작했다. 그는 "나는 누구냐?"고 스스로 묻고 "나는 육체가 아니다. 육체는 결국은 썩어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도 아니다. 두뇌는 육체와 함께 썩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격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다. 인격과 감정도 역시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고 깊은 의문을 가졌다. 그 깊은 자아에의 탐구는 그를 초월하는 의식상태로 이끌었는데, 희열을 느끼는 이 상태를 힌두 철학에서는 '사마디'(samādhi) 즉 삼매(三昧)라고 부른다. 그는 이후 고향 마을을 떠나 아루나찰라 산으로 가서 수행자가 되었으며, 그 후 인도에서 가장 젊은 구루의 한 사람이 되었다.

라마나 마하르쉬에게 크게 감명받은 영국인 폴 브런턴이 〈인도의 신비를 찾아서 My Search in Secret India라는 책을 발간하자,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이 라마나 마하리쉬의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방문하였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죽음과 악은 '비차라'로 쫓아 버릴 수 있는 환상일 뿐이며, '비차라'를 실천하면 참된 자아인 진아(Atman, True Self)를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되풀이되는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비차라'를 실천하거나 박티(헌신과 신애)를 실천하면 된다고 하였으며 이 두가지가 같은 결과로 이끄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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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조한 수행법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수행법으로

마치 소에게 여물을 내밀어 이끌고 가듯이

수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


명상가로서 진실하고 깊은 수준에 도달했던

침묵의 성자 라마나 마하르쉬.


그의 사상과 정취를 느끼는데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라마나_마하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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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뭄바이에서 1897년 3월 15일 하누만 자얀띠 날에 태어났다.

몹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에는 어느 회사 사환 직을 하다가 그만두고 

담배 장사를 하면서 평범한 상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37세 때 친구의 안내로 스승인 싯다라메쉬와르 마하라지를 만나 수행의 길에 들어선다. 

스승을 만난 지 3년 만인 1936년, 40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후 점차 세상에 알려져 

그의 집에는 구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981년 9월 8일 암으로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그는 가르침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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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청유엔(李靑雲;이청운) 1677~1933





이청운의 직업은 한의사였다. 시사중국기사에는 이경운(李慶遠)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청운은 200세 때에도 대학에서 강연을 했다고 하고, 24명의 부인을 맞아들였고

180명이 넘는 자손들을 남겼다고 한다.


뉴욕타임지에서 1933년 5월 6일자로 그에 대한 기사를 냈었다. (즉 이청운이 죽은 해)

또한 청나라 황실에서 150세 생일을

축하한다는 공식문서가 우중치에교수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는 산에서 약초를 캐고, 과식을 하지 않고

주로 밥과 소량의 포도주를 위주로 했다


위의 사진은 양센장군이 이청운을 만나 찍은 유일한 사진이라고 한다.

매일 구룡팔괘장을 연마했으며, 연잎, 결명자, 나한과, 구기자차등을 즐겨마셨다고 한다.


이청운의 원적은 운남성이고 90세 때에 사천성 개현에 정착했다.

이후 1927년 양센장군의 요청으로 만현으로 가서 장생술을 가르치게 되었다. 

이때 양센장군은 사진을 찍어서 걸어두었다고 한다. 이후 사천성은 그로 인해 들썩이게 되었다. 

앞다투어 그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장수비결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개현으로 돌아갔다.


이청운이 250세 되던해에 사천성 개현-즉 같은 동네 사람-인 유성훈(劉成勳)이 그를 인터뷰했고 

이청운은 신이나서 장생비법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고 한다. 유성훈은 이 인터뷰를 잘 정리하여

자술(自述)이라는 저서를 남긴다.


이후 유성훈의 회고글이 기공이라는 잡지에도 실리고, 북경의 한 신문매체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이라고 보도 하지만, 세계기네스북에서는 의심을 갖고 이청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청운의 장수비결

그는 3통을 주장했는데, 혈통, 요통,변통이 그것이다. 

이는 혈액순환, 소변, 대변이 잘 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사중국에서는 그의 장수 비결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원기(元氣;原氣)는 신(腎)에서 생겨 단전에 저장된다. 그리고 삼초(三焦)를 통해 전신에 퍼진다.

그리하여 오장육부가 작동한다. 원기는 신체가 활동하는 원천이 된다."


"생각과 욕심과 말을 절제하여, 기가 소모되고 낭비되지 않도록 하라.

과식하면 위장이 상하고, 지나치게 잠을 자면 정기가 손상된다.

이것을 명심하고 산다면, 따로 금단을 얻을 필요가 없고, 영약을 먹을 필요도 없다."


"춥거나 더울 때 조심하지 않고, 조급하게 걷거나, 술과 음탕한 일에 빠지는 일은 모두 몸을 상하게

만든다. 손상이 커지면 곧 죽게 된다. 빨리 걷지말고, 오래보지 말고, 끝까지 듣지말고, 피곤해질 때

까지 앉아있지 말라. 더워지기 전에 옷을 벗고, 목마르기 전에 물을 마셔라.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고 여러번 나눠서 먹어라. 희노애락이 몸이 미치지 않고 부귀영화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장수의 이치다."



타임지에는 그의 장수 비결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The article "Tortoise-Pigeon-Dog", from the May 15, 1933 issue of Time reports on his history, and includes Li Ching-Yuen's answer to the secret of a long life:[3]

  • Tranquil mind (고요한마음)
  • Sit like a tortoise (거북이처럼 앉고)
  • Walk sprightly like a pigeon (비둘기처럼 걷고)
  • Sleep like a dog (개처럼 잠) 


참고

위키백과-리청유엔(영문)

시사중국기사

뉴욕타임지기사

중앙일보블로그

맘스클럽


예전에 쓰던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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