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전의 위치는 단체마다 다르다.


국선도에서는 기해(氣海穴)이라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관원(關元穴)이라고 하며,

석문호흡에서는 석문(石門穴)이라고 한다.




기해혈(氣海穴)은 배꼽 아래로 손가락 두마디 거리이고,

관원혈(關元穴)은 배꼽 아래로 손가락 세마디 거리이다.

석문혈(石門穴)은 배꼽 아래로 2촌 거리(2촌은 검지, 중지,약지를 합친 거리)이다.


단전의 거리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재야 정확한다.

사람마다 인체의 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해는 말의 에너지가 모인 곳이기도 하다. (의심방 참조)


 한의학적으로 석문에 뜸을 뜨면 불임이 되기 때문에,

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참고

그림출처 : 기해 - 정력이 딸리는 그대 이곳을 뜸뜨라

석문혈의 위치 - 네이버블로그

건강 인생 기를 살린다 - 11.국선도 上

언어의 양생 - 의심방 방내 -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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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경 (Metta Stura)


유익한 일에 능숙하여서 평정의 경지를 성취하고 하는 사람은

유능하고, 정직하고, 고결하고, 상냥하고, 온유하고, 교만하지 말지어다.

만족할 줄 알아서 남이 공양하기 쉬워야 하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며 감관은 고요하고 슬기로울지이니,

가정에서는 무모하거나 탐착 하지 말아지이다.

다른 양식있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만한 어떠한 사소한 행동도 삼가 하오니,

안락하고 평화로와서 모든 뭇 삶들은 행복하여 지이다.

살아있는 생명이건 어떤 것이든 동물이건 식물이건 남김없이

기다랗거나 커다란 것이든 중간이건 짧건 미세하건 거칠건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살건 가까이 살건

이미 생겨난 것이건 생길 것이건 모든 뭇 삶은 행복하여 지이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지 아니하고 헐뜯지도 말지니,

어디가든지 누구든지 분노 때문이든 증오 때문이든

서로에게 고통을 바라지 않나이다.

마치 어미니가 자신의 아들을 하나뿐인 목숨 바쳐 구하듯이

이와 같이 모든 중생에게 무량한 마음을 닦게 하여지이다.

또한 일체의 세계의 대하여

높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넓은 곳으로

장애 없이, 원한 없이, 적의 없이,

자애로운 무량한 마음을 닦게 하여 지이다.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깨어 있는 한

자애의 마음을 굳게 새기니 이것이 참으로 신성한 삶이옵니다.

삿된 견해에 의존하지 않고

계행과 통찰하여 보는 법을 갖추어 감각적 욕망을 제어하면

결코 다시 모태에 들지 않을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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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무드라의 노래

                                                                                      

                                           틸로빠 頌

 

        마하무드라(大印) 
        이는 모든 언어와 상징을 넘어섰다. 
        그러나 그대 나로빠(Naropa)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이 묘리(妙理)를 말한다.



                        1

 

        공(空)은 아무 관계도 필요치 않다 
        마하무드라여, 空의 굽이침이여 
        무(無)에 뿌리박은 대인(大印)이여 
        의도 없이, 어떤 인위적인 의도도 없이 
        긴장을 풀고 여유있고 자연스러워라 
        관계의 끈을 끊어버릴 때 
        아아, 그 순간 절대 자유가 드러나리니.


                        2

 

        空으로 돌아가려는가, 허공을 보라 
       본래대로 살고자 하는가, 마음을 주시하라 
       거기에 모든 차별은 무너지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있나니 
       구름은 흘러가고 있다 
        뿌리도 집도 없듯이 
        본성(마음) 밖으로 떠도는 사념(思念)들도 
        이와 같다.

        일단 본자리로 돌아가면 
        모든차별은 사라지나니 
        갖가지 모양을 띈 구름 
        본성의 하늘에 떠다니고 있다 
        그러나 본성은 
        그 빛깔과 모양에 물들지 않나니

        이 모든 것이여 
        슬픔의 싹인 이 차별심(差別心)이여 
        본성의 바다에 떠오르는 물거품인 것을 
        그렇지만 본성은 
        선(善)과 악(惡)에 물들지 않는다.


                        3

 

        이 밤의 긴 어둠이 
        떠오르는 태양을 가릴 수 없듯이 
        무량겁 윤회의 긴 세월도 
        마음의 찬란한 빛은 가리지 못한다.
        언어로써 공(空)을 설명하지만 
        空은 결코 언어로써 표현될 수 없나니 
        마음이여 눈부신 빛이여 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모든 언어와 상징을 넘어 있다. 
        마음이여, 텅 빈 거울이여 
        모든 것은 텅 빈 그 속에 있고 
        텅 빈 그것은 모든 것을 싸고 그 속에 
        스며있다.


                        4

 

        몸을 움직여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라[無爲]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하라 
        마음을 비워라. 공(空)만을 관(觀)하라 
        텅 빈 대나무처럼 몸의 긴장을 풀어라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다. 오직 마음을 편안히 
        하라 
       마하무드라의 경지는 집착없는 빈 마음 
        같다 
        이 같이 갈고 닦아 때가 오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부처를 이루리.


                        5

 

        만트라 암송과 바라밀다의 실천 
        경전 독송과 계율 엄수 
        강원(講院)교육과 성전의 가르침 

            이 모든 것을 초월하지 않고서는

        본연의 진리는 깨달을 수 없다 
        마음이 어떤 욕망으로 가득차서

        목적을 찾는다면 
        그건 다만 빛[반야]을 가릴 뿐.

        탄트라 행자가 아직 분별심이 있다면 
        그는 삼매(三昧)정신을 어긴 것 
        모든 행위를 그치고 욕망을 버려라 
        사념(思念)들이 밀려왔다 가도록 내버려 두라. 
        바다의 물결들이 밀려왔다 가듯이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것을 비방하지 않고 
        차별없는 이 이치를 비웃지 않는 사람은 
        바로 탄드라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다 
        갈망을 버리고 
        그 어느 것에도 집착없는 사람은 
        아아, 성전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리.

    

                        6

 

        마하무드라 속에서는 모든 죄가 소멸된다 
        마하무드라는 이 세상의 감옥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 
        이것은 위대한 진리의 빛이다 
        이를 믿지 않는 자, 어리석은 자는 
        끝없는 불행과 슬픔의 늪을 헤매게 된다

        진리를 갈구하는 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 
        스승의 축복이 마음 깊이 스며들 때 
        해탈은 그대 손안에 있다 
        아아, 이 세상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들은 한낱 슬픔의 싹일 뿐 
        얕은 가르침은 행위로 이끄나니 
        그대는 오직 위대한 가르침만 따라야 한다.

 

 

                         7

 

        상대적인 생각을 초월하는 것은 높은 견해요 
        마음의 산란함을 정복하는 것은 법왕다운 
        수행이다 
        정한 바 없는 길[無有定法]은 모든 부처님의 
        길이요 
        이 길을 가는 자는 부처의 본성에 이른다 
        이 세상은 덧없는 것 
        꿈이여, 환영(幻影)이여 
        그 본질은 공(空)이다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 
        혈육관계마저 벗어나거라 
        욕망과 원한의 오랏줄을 끊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 나를 찾으라 
        인위적인 조작 없이 
        여유있게 자연스러운 상태에 머문다면 
        머지않아 마하무드라를 나타내고 
        얻을 것 없는 그 경지를 얻게 되리라.

 

 

                        8

 

        나무의 뿌리를 자르면 잎은 마르듯 
        마음의 뿌리를 자르면 윤회는 끝난다 
        등(燈)의 불빛이 순간적으로 영겁의 어둠을 
        몰아내듯 
        마음에서 나오는 그 강렬한 빛[자성의 혜]은 
        無明의 장막을 걷어버린다

        지식에 집착하는 사람은 
        참된 진리를 볼 수 없다 
        수행법에 매달리는 사람도 
        참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다 
        지식과 수행법 너머 진리를 알려면 
        마음의 뿌리를 철저히 잘라버리고 
        적나라한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라 
        이같이 모든 차별에서 벗어난다면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되리라.

 

 

                        9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남아있거라 
        마하무드라는 받아들임과 물리침을 모두 
        넘어선 곳이다 
        본성[참마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그 누구도 그것을 방해하거나 더럽힐 수 없다

        태어나기 이전 세계에 머물러라 
        모든 현상은 자신의 원소 속으로 분해되어 
        의지와 자부심은 空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10

 

        최고의 가르침은 
        상대적 견해를 초월하는 것이다 
        최고의 행위는 
        모든 것을 애착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최고의 성취는 
        욕망을 버리고 본성을 깨치는 것이다

        깨침의 처음 단계에서 수행자는 
        그 마음이 폭포처럼 추락함을 느끼리라 
        중간에는 강물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게 
        흐르리라 
        마지막에 가서 마음은 드넓은 바다가 된다 
        아아, 마침내 강물이 어머니인 바다에서 
        하나로 합쳐지게 되리라. 
  
  
                                                

          십년전 소요산에서 만난 태광스님에게 받은 책을 기본으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재 편집하였다<2006년, 소요 언뜻>

   

 

         <영원으로 돌아가는 길, 범징 태광, 한불문화출판,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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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은 대승불교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경전이다.


니까야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잘못 읽으면 외도가 되어버린다.


이는 석가불과 다보불의 차이이기도 하다.


석가불이 공성의 진리를 체득했다면

다보불은 무상의 진리를 체득하셨다.


그래서 석가불과 다보불의 만남은

영원한 만남이 되며

영원한 축제가 된다.


화엄, 법화 세계

용화 세계

미래의 부처는

그 세상에서 춤추고 뛰어 놀 것이다.



'너희들이 좋아하고 갖고 싶은, 희유하고 얻기 어려운 장난감이 있는데, 지금 너희들이 가지지 아니하면 이 뒤에 반드시 후회하리라. 여러 가지 양이 끄는 수레[羊車], 사슴이 끄는 수레[鹿車], 소가 끄는 수레[牛車]들이 지금 대문 밖에 있으니, 너희들이 이 불타는 집에서 빨리 나와 가져라. 너희들이 달라는 대로 나누어 주겠노라.' - 법화경 中



진리는 대문 밖에 있지 않다.
대문 안에 진리가 있다.
모든 이가 허공성의 진리를 깨우칠 때

비로소 세상의 껍질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영원 무상한 진리만이 
세상에 한가득 흐르게 될 것이다.

다보불은 일정한 형상이 없으나

석가모니불을 장엄하기 위해 무조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석가 있는 곳에 다보불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자탑전분반좌에서 

다보불은 마하가섭이다.


참고

[스크랩] 법화경(묘법연화경) hwp 다운받으세요. 모든 경전의 왕(王)입니다. - 네이버 블로그

다보불 - 네이버 두산백과

다자탑전분반좌-불교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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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

- 물에서 배운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입니다.

그러기에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낮은 데를 찾아가 사는 자세

심연을 닮은 마음

사람됨을 갖춘 사귐

믿음직한 말

정의로운 다스림

힘을 다한 섬김

때를 가린 움직임.


겨루는 일이 없으니

나무람받을 일도 없습니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 처증인지소악 고기어도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실유부쟁 고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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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속을 왔다갔다할 수 있는 사나이


진(晋)나라  재상이었던 조양자(趙養子)가 부하 10만 명을 이끌고 중산(中山)으로 사냥을 나갔다. 온 산을 헤집고 다녔지만 짐승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을 지르면 동굴이나 바위틈에 숨어 있던 짐승들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산에 불을 질렀다. 연기와 함께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때 저쪽 바위 절벽에서 무언가가 나오더니 연기와 함께 치솟아 오르는 불길 속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괴물이 아닌가 했다. 불길이 사그라지자 그것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기이하게 생각한 조양자는 그 모습을 분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얼굴과 이목구비가 괴물이 아니라 틀림없는 사람이었다. 더욱 놀란 조양자가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아니 당신은 보아하니 사람인데 어떻게 바위 속에서 살고 불길 속을 왔다갔다할 수 있는 것이오?"

 그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엇이 바위이고 무엇이 불인가요?"

조양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허, 아까 당신이 나온 곳이 바위이고 당신이 조금 전에 지나온 곳이 불구덩이 아니오?"

그 사람이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후에 이 이야기를 들은 위(魏)나라 귀족 문후(文候)가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에게 물었다.

"선생은 불길 속을 오르락내리락했다는 사람 얘기를 들은 적이 있소?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까?"

자하가 대답했다.

"저의 스승이신 공자님 말씀에 따르면 '만물과 조화를 이룬 사람은 어떤 것도 그를 해치지 않으며, 바위 속을 방 드나들듯이 드나들고, 불 속으로 걸어 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문후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선생도 그와 같이 할 수 있습니까?"

"아니오. 저는 마음 비우는 공부가 될 되어서 그처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는 말만 전할 뿐이지요."

"그러면 당신의 스승이신 공자께서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예,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이지요. 하지만 그런 특별한 행동을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이 말은 들은 문후는 마음이 흡족했다. 그리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열자 샴발라 총서 8, 시공사 83~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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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군자는 한 번 있었던 일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않는다. 일이 오면 오는 대로 응하고, 가면 가는 대로 잊어, 마음을 항상 비워 둔다. 


성긴 대숲에 바람이 불어오면 댓잎이 산들거리며 무엇인가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이 불어올 때 그때뿐이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까지 대나무가 그 소리 를 머물게 두지는 않는다. 바람과 함께 보내버리고 마는 것이다. 차가운 연못 위를 기러기가 날아가면 율동적인 한 그림자가 연못을 미끄러져 간 다. 그러나 그것은 기러기가 날아갈 때 그때뿐이다. 기러기가 지나가 버린 뒤에 까 지 연못이 그 그림자를 붙잡아 두지는 않는다. 기러기와 함께 자취 없이 보내버리 고 마는 것이다. 사물이 오면 오는 대로 응하고, 가면 또 가는 대로 보내어 흔적을 남겨두지 않는 대나무와 연못, 그것은 흡사 군자의 마음과도 같은 것인가! 도덕이 높은 군자는 한 번 있었던 일을 마음에 오래도록 담아 두는 일이 없다. 사 물이 오면 고요하던 마음이 비로소 움직여 그에 따라 알맞게 응하고, 사물이 가버 리면 가는 대로 그 일은 깨끗이 잊고 마음이 다시금 공허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다. 군자의 마음은 고요하여 항상 비어 있다. 그래서 군자는 허다하게 들이 닥치는 변 화로운 사건을 그때마다 다 알맞게 처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군자는 마음 을 써도 써도 피로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風來疎竹호되 風過而竹不留聲하고 

雁度塞潭호되 雁去而潭不留影하나니 

故로 君子는 事來而心始現하고 

事去而心隨空이니라.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오되 바람이 지나가버리면 대나무는 소리를 멈추지 않는 다.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건너되 기러기가 가버리고 나면 연못은 그림자를 머 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事物이 오면 마음이 비로소 나타나고 사물이 없 어지면 마음도 따라서 비어버린다.




홍자성의 저서인 채근담은, 유가적 입장에서 도가와 불가를 포용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단순한 처세를 말하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며 세상의 일에 임하고, 

물러난 뒤에도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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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불 관련 메모


문수보살 - 지혜

보현보살 - 시철

관음보살 - 자비

지장보살 - 구원


김교각스님은 구화산 지장보살로 추앙받았다.


백토소미를 먹었는데, 백토 + 쌀을 의미한다.


김가기  - 대유학자, 국자감 학생 ( 당나라에서 학비 지원)

혜초 - 당나라 유학생 (학비지원)

현장스님 - 법상종 창시

원측스님, 의상대사 - 인도 불경 해석

의상대사는 지상사의 지엄대사에게 화엄사상을 배움


수혜미라는 시는 김교각 스님이 직접 남긴 시다.


酬惠米  - 金喬覺

 

란 納布依 浮海修身到華西 

原身乍是尊王子 慕道相逢吳用之 

來散구 門求他語 昨정 送米續農炊 

而今餐食黃精飯 腹飽忘思前日饑 


수혜미 - 김지장


「비단옷 포의로 갈아입고 바다건너 도를 구하려 구화산을 찾아왔다네. 

나는 본디 왕자였다오. 수행의 길에서 사모하는 오용지를 만났네. 

가르침을 주는 것만도 고맙거늘 이제는 이렇게 쌀까지 보내왔다네. 

반찬을 준비하고 좋은 쌀로 밥을 지어 배부르게 먹고나니 

지난날의 배고픔 모두 잊어 버렸네.」 



참조

수혜미 - 조인스블로그

김교각스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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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의(坐禪儀) 
좌선의 방법


참선이란 좌선을 뜻한다.
좌선을 하기에는 조용한 곳이 가장 좋다. 두꺼운 방석을 바닥에 깐다. 바람이나 안개가 끼지 않도록 하고, 혹은 비나 이슬이 맺히지 않는 곳을 택한다. 않은 자리를 편안히 유지하다록 한다. 옛사람들은 금강보좌에 앉거나 혹은 바윗돌 위에 앉았다. 앉을 때는 풀을 두껍게 깔고 앉았다

앉은 곳이 어둡지 않도록 한다. 밤이나 낮이나 어둡지 않도록 유지해야 한다. 겨울에 춥지 않고 여름에 덥지 않아야 한다. 모든 관계를 끊고 일을 쉰다. 선(善)도 생각하지 않고 악(惡)도 생각하지 않는다. 좌선은 지적 사고나 의도나 의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기억이나 상상, 혹은 숙고와도 상관이 없다. 부처가 되려고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앉거나 눕는 것에도 차별상을 두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해야 한다. 시간을 빈둥빈둥 보내지 말고 좌선을 열심히 하되, 마치 머리 위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해야 한다. 황매현 쌍봉산의 오조 스님은 오로지 좌선만을 실천하셨다. 좌선을 할 때에는 가사를 입고 방석을 사용한다. 방석에 다리를 모두 올려놓아서는 안되고, 다만 엉덩이만 걸치도록 한다. 결국 다리는 바닥에 있고 척추만 방석위에 있게 된다. 부처님이나 조사님들도 이런 방식으로 좌선수행을 하셨다.

앉을 때에는 반가부좌나 결가부좌를 하도록 한다. 결가부좌를 할 때에는 오른 발을 왼쪽 장딴지 위에 올려놓고, 왼쪽 발은 오른 장딴지 위에 올려놓는다. 발가락 끝의 선이 허벅지 밖으로 나가지 않게 일직선이 되도록 한다. 반가부좌 시에는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된다. 의복과 가사는 꼭 조이지 않도록 한다. 오른 손을 왼발 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왼 손은 오른손바닥 위에 올려 놓는다. 엄지손가랄 끝은 살짝 붙인다. 두손을 이렇게 하여 몸에 가까이 둔다. 그러면 엄지손가락은 배꼽 부위에 위치하게 된다.

등을 똑바로 세우고 앉는다. 몸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한다. 귀가 어깨와 일치하도록 하고, 코는 배꼽에 일치시킨다. 그리고 혀는 입천장에 위치시킨다. 입술을 다물고, 숨은 코로 쉬는 것이다. 눈은 뜨는데 너무 크게 뜨거나 너무 작게 떠서는 안된다. 몸과 마음을 안착시키고 숨을 크게 들이마셔 뱉는다..

삼매에 들어서 고요히 앉아 있는다. 무상(無想,생각 없음, not-thinking)을 생각한다. 어떻게 무상을 생각하는가? 그것은 생각 너머의 생각이다. 이것이 법(dharma)에 따른 좌선의 방법이다. 좌선이란 명상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좌선 그 자체가 위대한 평화와 즐거움에 이르는 법(法)의 문이다. 이것이 깨끗한 수행의 실천이다.

정법안장 좌선의 제 11권 관원 원년(寬元元年, 1243년) 11월 월주 길전현 (越州吉田縣, 에츠슈 요시다껜) 길봉정사(吉峰精舍, 요시미네 쇼쟈)에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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