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수행자/한국] 수덕사 방장 혜암현문스님

by 하늘의흐름 2016. 11. 15.
반응형




  혜암스님은 조선조 5백년 역사의 막이 서서히 내려지던 1885년 12월 1일 황해도 백천군 해월면 해암리에서 최사홍(崔四弘)과 전주 이(李)씨의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속명은 순천(順天).

  11세 때인 1895년 부친상을 당해 이듬해 출가(出家)를 결행, 경기도 양주군 수락산 흥국사(興國寺)에서 삭발한 이래 줄곧 수행에 전념해왔다.

  16세 때인 1900년 이보암(李保庵)스님을 은사로, 표금운(表錦雲)스님을 계사(戒師)로 득도하고, 27세 때인 1911년 서해담(徐海曇)스님을 계사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성월(性月)스님 회상(會上)에서 정진하며 화두(話頭)를 간택받았다. 

  그 뒤 만공(滿空), 혜월(彗月), 용성(龍城)스님 등 당시 선지식들을 모시고 용맹정진, 근 6년의 운수행각(雲水行脚)과 좌선(坐禪)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그가 부른 깨달음의 노래는 다음과 같다.

  語默動靜句 箇中誰敢着
  問我動靜離 卽破器相從

  이를 자유로운 해석으로 우리글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어묵동정' 한마디 글귀를 누가 감히 손댈 것인가. 내게 말도 침묵도 움직임도 움직이지 않음도 여의고, 한마디 이르라면 곧 「깨진 그릇은 서로 맞추지 못한다」고 하리라.』
  이무렵 스님은 묘향산 상원사(上院寺) 주지와 강원도 정선군 정암사(정암사)주지를 잠깐씩 역임하기도 했으며 45세 때인 1929년, 당시 수덕사 조실(祖室) 만공(滿空)스님으로부터 전법게(傳法偈)와 혜암(惠菴)이란 법호를 받고 법통을 이었다.

  만공스님이 내린 전법게는 


구름과 산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고
또한 대가(大家)의 가풍(家風)도 없구나
이와 같은 글자 없는 인(印)을
혜암 너에게 주노라.

  雲山無同別
  亦無大家風
  如是無文印
  分付惠菴汝


만공스님의 인가

 덕숭총림 초대 방장 혜암현문(慧庵玄門, 1884∼1985)스님은 1929년 만공스님으로부터 전법을 받은 뒤에도 무섭도록 철저한 정진을 했던 선지식이다. 1943년 만공스님과 간월도로 가는 배 위에서 나눈 법담은 유명하다. 그 자리에서 만공스님은 혜암스님에게 “저 산이 가는가? 이 배가 가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혜암스님은 “산이 가는 것도 아니고 배가 가는 것도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만공스님이 “그러면 무엇이 가는가”라고 묻자 손수건을 말없이 들어 보였다. 이에 만공은 ”자네 살림살이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라며 인가해 주었다고 한다. 혜암스님은 1956년 세수 72세 때 수덕사 조실로 추대돼 덕숭산에 주석하며 30년 동안 후학을 양성했다. 한국 전통선의 진수를 전하기 위해 1984년 10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국 서부 능인선원 봉불식에 참석해 한국불교를 미국에 전파하는데 앞장섰다.



만공스님은 일제시대 때에 간월도로 가서

우리나라의 민족해방과 자주독립을 위한 천일기도를 입재했습니다. 

아마 그곳에 갈무렵으로 보이네요.


 


참고

혜암선사-행장

혜암현문

혜암스님의 에너지장

만공스님의 천일기도


저서

<생사해탈의 관문 선문촬요>

<바다 밑의 진흙소 달을 물고 뛰네> 법어집

달마대사 혈맥론(e뭣고 선어록총서 1)

달마대사 관심론(e뭣고 선어록총서 2)

보조국사 수심결(e뭣고 선어록총서 3)

보조국사 진심직설(e뭣고 선어록총서 4)

선경어(e뭣고 선어록총서 5)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