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전 - 바오펑산 지음, 이연도 옮김/나무의철학 |
그동안 논어도 읽어보았지만
공자라는 인간상을 그리는데 있어서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다.
논어의 구절들이 모두 단편적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공자가 어떤 상황에서 한 말인지 그려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감을 하기도 어려운 점이 많았고, 의미를 음미함에 있어서도
다소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았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인지?
어떤 마음상태였던 것인지?
어떤 관점이었던 것인지?
그러다가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공자라는 인간을 탄생부터 마지막까지 세부적으로 해부하면서
그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인생의 여러 단계들과 거기에 맞게 논어나 공자가어등의 사료를 엮어서
그 공정성을 확보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부서져 있던 공자의 단편들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전체적인 인간상을 만들 수 있었고,
공자의 향기를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부록을 옮겨본다.
공자 연표
기원전 551년 (노 양공 22년)
음력 9월 28일,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출생(현 산둥성 취푸시 난신진 누위안촌)
기원전 549년 (노 양공 24녀)
3세, 부친 숙량흘 별세
기원전 537년 (노 소공 5년)
15세, 후일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라고 말했다.
기원전 535년 (노 소공 7년)
17세. 모친 안징재 별세, 부모 합장, 상복을 입고 노나라 대부 계손씨의 연회에 참석하러
갔다가 가신 양화에 의해 출입을 제지당했다.
기원전 533년 (노 소공 9년)
19세. 복상을 마친 후 송나라로 가서 기관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기원전 532년 (노 소공 10년)
20세. 노나라로 돌아와 아들 공리를 낳았다. 노 소공이 축하의 의미로 잉어를 보내와
이를 이름으로 삼았고, 자는 백어라고 지었다. 계손씨 집안의 위리직을 맡아 창고를
관리했다.
기원전 531년 (노 소공 11년)
21세. 계손씨 집안의 승전 직을 맡아 가축을 관리했다.
기원전 525년 (노 소공 17년)
27세. 담나라 군주 담자가 노나라를 방문했다. 공자가 가르침을 구해 고대관직의 이름에
얽힌 유래를 배웠다.
기원전 522년 (노 소공 20년)
30세. 후일 "30세에 예를 알아 스스로 섰다"라고 말했다. 제나라 군주 경공과 안영이
노나라를 방문했는데, 그 자리에 참여해 접견했다. 계씨 집안의 가신 직을 사임하고, 사학을
설립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기원전 518년 (노 소공 24년)
34세. 노 소공의 지원으로 주 왕조의 수도인 낙읍을 방문해 노자에게 학문을 물었다.
기원전 517년 (노 소공 25년)
35세. 노나라로 귀국했는데, '팔일무'사건이 발생했다. 소공이 삼환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제나라로 망명했다. 공자 역시 제나라로 갔다. 태산을 지나며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라는 현실을 경험했다. 제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인지 물었다.
기원전 515년 (노 소공 27년)
37세. 노나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51세 관직에 나갈 때까지 사학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가르치는 데 신분 차별을 두지 않았다. 역사서에는 '제자 3천', '현자 72인(혹은 77인)'
이라고 부른다.
기원전 512년 (노 소공 30년)
40세. 후일 "40세에 이르러 미혹되지 않았다"고 했다.
기원전 505년 (노 정공 5년)
47세. 양화가 계손씨를 통제하며 노나라 권력을 장악했다. 공자는 길에서 양화를 만났는데,
완곡하게 관직에 나오라는 제의를 거절했다.
기원전 502년 (노 정공 8년)
50세. 후일 "50세에 천명을 알았다"고 했다. 노나라 삼환이 양화를 공격하니, 양화가
패해 제나라와 진나라로 도망쳤다.
기원전 501년 (노 정공 9년)
51세. 관직에 나서 중도재에 임명되었는데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기원전 500년 (노 정공 10년)
52세., 소사공을 거쳐 대사구로 승진했다. 행섭상사로 노 정공을 보좌해 제나라와의
협곡 회합에서 크게 활약했다.
기원전 498년 (노 정공 12년)
54세. '휴삼도'정책으로 공실의 강화를 꾀했다. 후읍과 비읍의 성벽을 철거하고 성읍의
성벽도 허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기원전 497년 (노 정공 13년)
55세. 제나라가 노나라에 미녀와 좋은 말을 보냈다. 결국 공자는 사직하고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갔다. 이후 14년 동안, 위, 조, 송, 정, 진, 채, 초등 7개 나라를 주유했다.
기원전 496년 (노 정공 14년)
56세. 위나라에서 관직을 맡았는데, 위 영공은 '곡식 6만 두'를 봉록으로 주었다.
위 영공의 부인 남자를 만났다.
기원전 492년 (노 애공 3년)
60세. 진나라에 머물고 있었는데, 후일 "60세, 귀에 들리는 말들이 모두 순리에 맞았다."고
했다. 송나라를 지날 때 사마환퇴의 살해 위협을 받아 미복으로 갈아 입어야 했다.
계손씨가 공자의 제자 염구를 노나라로 불러들였다.
기원전 489년 (노 애공 6년)
63세,. 초나라로 가는 길에 진나라와 채나라의 국경 부근 황야에서 포위당했다.
양식이 떨어져 7일 동안 굶어야 했다.
기원전 484년 (노 애공 11년)
68세. 노나라 계강자가 돌아오기를 청하여, 열국을 주유하는 일을 멈추고 귀국했다.
귀국하기 한 해 전에 공자의 부인 기관씨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공자는 교학과
고대 문헌을 정리하고 연구하는 일에 몰두했다.
기원전 482년 (노 애공 13년)
70세. 스스로 "70세, 마음먹은 대로 해도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해에 공자의 아들 공리가 세상을 떠났다.
기원전 481년 (노 애공 14년)
71세. 제자 안회가 병으로 죽었다. 이 해에 노나라 군주가 서쪽에서 기린을 포획했다.
이에 공자가 <춘추> 집필을 그만두었다.
기원전 480년 (노 애공 15년)
72세. 제자 자로가 위나라에서 전사했다.
기원전 479년 (노 애공 16년)
73세. 사망. 제자들이 공자를 위해 3년을 복상했고, 이후 자공은 홀로 3년간 공자의 묘를 지켰다.
말미에는 77제자 일람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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