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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탐구/서양영성

하시디즘의 신비가 (feat. 중광스님)

by 하늘의흐름 202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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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디즘의 신비가 죠셉 자코브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왕자가 있었다. 그는 왕자다운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늘

문제를 일으켰다. 그래서 왕은 무척 화가 났다. 어떤 방법을 써도

안 되자 마침내 왕은 그를 바로잡기 위해서 궁정 밖으로

추방시켰다. 그렇게 하면 왕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자는 기꺼이 궁정을 떠났다. 그는 전혀 용서 따위를

구하지 않았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리로 나갔다. 그래서는

술주정꾼과 노름꾼과 창녀들과 어울려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일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서히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왕자였기 때문에 당연히 지도자가 될만한 힘을 갖고 있었다.

 

여러 해가 흘렀다.

왕은 점점 나이가 들었으며, 자신의 아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더 늦기 전에

아들을 궁정으로 데려와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영리한 대신을 아들에게 보냈다.

그 대신은 많은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황금빛 마차를 타고 떠났다.

마을 입구에 무척 화려한 막사를 설치하고 나서 대신은 왕자에게

사신 한 사람을 보냈다. 그 마을은 너무나 지저분했으며 온갖

종류의 범죄자들이 들끓었기 때문에 대신 자신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신은 사신을 보내 왕자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왕자는 사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결국

대신은 실패하고 궁정으로 되돌아갔다.

왕은 이번에는 보다 용기있는 대신을 보냈다.

두번째 대신은 첫번째 대신이 실패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다.

그는 수행원도 없이 혼자서 평범한 복장을 하고 마을로 들어가 그

집단에 합류했다. 서서히 그는 마을의 부랑아들과 친해져갔다.

그리고 그 자신이 그 자유를 즐기기 시작했다.

궁정 안에서는 전혀 자유가 없었다. 궁정은 마치 감옥과 같았다.

그러나 그 부랑아들의 집단 속에서는 모두가 자유로웠다.

아무도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았다.

그들은 술주정뱅이였고 노름꾼이었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 대신은 자신의 목적을 잊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으며 영원히 왕에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왕은 무척 걱정이 되었다. 이제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세번째 대신을 선택했다.

이 대신은 용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혜로웠다.

그는 떠나기 전에 석달간의 여유를 달라고 왕에게 부탁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러 떠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왕이 물었다.

"무엇을 준비하기 위해서인가?"

그 대신은 대답했다.

"내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왕의 허락을 받은 대신은 한 스승을 찾아갔다.

늘 깨어 있는 마음을 갖는 수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 대신이 실패했던 것은 자기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세번째 대신은 스승에게 말했다.

"내가 내 자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그는 그 스승 밑에서 자기 자신을 기억하는 수행을

석달동안 계속했다.

그 다음에 그는 왕자를 만나기 위해서 떠났다.

그는 두번째 대신과 똑같이 행동했다.

아무런 수행원도 거느리지 않고 평범한 농부의 복장을 하고서

마을로 들어간 그는 술주정뱅이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 집단과 하나가 되어 술을 마시는 흉내를 내었고, 노름을 하는

흉내를 내었다. 심지어 한 창녀와 사랑에 빠지는 흉내까지 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흉내였다.

그는 절대로 자기 자신을 잊지 않았다.

그는 늘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무엇을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지켜보았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 <성자가 되기를 거부한 수도승> 56~59p

 

... 그는 어떤 상황이 와도 자기 자신을 잊지 않았으며,

흉내 내기에 능숙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도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다.

걸레스님이라고도 불린 중광스님이다.

온갖 기행으로 유명해진사람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흉내 내기에 불과 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왕은 하느님이라고 해도 좋고, 붓다라고 해도 좋다.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기 위해 예언자나 깨달은 이를

우리 곁에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사람을 깨우쳐준다고 해도

대부분은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는 사실이다.

눈을 뜨게 해달라고 말하지만

진정으로 눈을 뜨는 것은 원하지 않는 현실인 것이다.

 

중광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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