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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한국철학] 일하는 한울님 - 해월 최시형의 삶과 사상

by 하늘의흐름 2017.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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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한울님 - 10점
윤석산 지음/모시는사람들



천도교의 정신과 동학농민운동. 그리고 최수운의 대를 이은
해월 최시형을 정신을 엿보기 위해 선택한 책이다.


발췌

한편 당시 새로운 조류로 다가온 서학은 '신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사상과 서구문명의 보급등을 통해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기면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 27p

즉 당시 사람들은 비 중국적이고 비 유교적인 서구문화를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서구문명을 외면하고 중국 중심의 세계관과 유교적 전통의 가치를
고수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재발견 할 것인지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 27p

내가 젊었을 때 스스로 생각하기를 옛날 성현은 뜻이 특별히 남다른 표준이
있으리라 하였더니, 한번 대선생을 뵈옵고 마음공부를 한 뒤부터는, 비로소
별다른 사람이 아니요 다만 마음을 정하고 정하지 
못하는데 있는 것인줄 알았노라. - 38p <해월신사 법설>

해월은 수운 선생의 '시천주(侍天主)'를 이어, "세상의 모든 사람을 한울님같이
대하고 섬겨야 한다"는 사인여천()의 윤리를 천명하고, 이를 실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고자 노력했다. - 45p

한울님은 수운 선생에게 "나 역시 공이 없어서 너를 세상에 내놓았다."고
말하는 노력하는 신이다. 즉 "개벽이후에 애를 썼으나 공을 이루지 못했는데,
오늘에서 너를 만나 비로소 성공하게 되었다." (勞而無功) - ?

낮이면 동네 사람들과 간간이 어울리기도 하고, 나막신을 만들거나 짚신도
삼고 멍석도 짜서 생게를 꾸리는 한편, 밤이면 고요히 앉아 수련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 77p

특히 해월이 1897년 2월 음죽국 앵산동(현 이천군 설성면 수성리)으로
이주한 이후, 그해 4월 5일 수운선생 득도일을 맞아 제례를 행할 때
향아설위에 의한 제례를 모시도록 하였음이 주목된다. - 276p

비록 몸은 병환으로 불편하였지만, 10월 28일 스승인 수운선생의
탄신일을 맞아 탄신향제를 겸하고는 모인 제자들을 향해
해월을 많은 법설을 한다. 이때 행한 법설은 
첫째, 기운과 이치에 관한 법설, 둘째, 강화와 천어해석에 관한 법설,
섯째, 후천개벽에 관한 법설, 넷째, 이천식전에 관한 법설, 
다섯째, 심화와 물약지효에 관한 법설 등이다. - 280p

즉 해월이 말하는 '만국의 병마가 우리나라에서 철수를 하여 나갈 때에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의 남북의 문제가 어떠한 형태로든지 해결이 되는 때이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사의 판도가 오늘과는 다르게 바뀔 것이
분명하다. - 283p


해월은 강수, 유인상, 전성문, 김혜성등과 적조암에 갔다.
1872년 10월 15일의 일이다. 다섯 사람이 둘러 앉아 정성으로
하루 삼만 독씩 동학의 주문을 읽으며 수련에 임하였다. 

동학의 주문은 '지기금지원위대강'의 강령주문과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의 본주문으로 되어 있다. 
강령주문과 본주문을 합하여 3·7자 주문, 
곧 스물한 자 주문이라고 말한다.

 하루 삼만 독씩 주문을 읽었다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주문에만 전념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 49일의 수련을 끝마치고 그 후 며칠간은 
한울님과의 영적 교류를 상징하는 영부를 그렸다고 되어 있다.

 수운 선생은 경신년(1860년) 4월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할 때, 
한울님으로부터 주문과 영부를 받았다. 

수운 선생의 종교체험 가운데 한울님과 
수운 선생이 대화를 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나에게 영부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이요, 
또 그 형상은 궁궁이니, 나의 이 영부를 받아 사람의 질병을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가르쳐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

내 또한 그 말씀에 감격하여 그 영부를 받아 써서 
물에 타 먹어본즉 몸이 윤택해 지고 병이 나으므로 
바야흐로 이에 선약인 것을 알았노라.

이에 이르러 병에 써본 즉 혹 낫는 이도 있고 
낫지 않는 이도 있으므로 그 까닭을 알지 못해서 
그 연유를 살펴본 즉 정성을 들이고 또 들여서 지극히 
하날님을 위하는 사람은 번번히 들어맞고,
도덕을 순종치 않는 자는 하나도 효험이 없으니 
이것은 받는 사람의 정성과 공경이 아니겠는가.


참고

동경대전-포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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