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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탐구/동양영성

[불교/초기불교] 가장 기본적인 수행

by 하늘의흐름 2019.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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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본적인 수행

상윳따 니까야: 35 사라야따나 상윳따 120

어느 때 사리뿟따 존자는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있었다. 그때 어떤 비구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벗, 사리뿟따여, 나와 함께 지내던 비구가 수행생활을 그만두고 세속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벗이여, 감각기관의 문을 지키지 않을 때, 먹는 것에 적당한 양을 조절하지 못할 때,

그리고 온전히 깨어있지 못할 때, 이런 사람이 그의 온 일생을 온전하고 청정한 수행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벗이여, 만일 비구가 감각기관의 문을 잘 지키고 먹는 것에 적당량을 알고 그리고 온전히 깨어있다면,

그의 온 일생을 온전하고 청정한 수행자의 삶을 사는 것은 가능합니다.


(여섯 감각기관의 절제)

그러면 감각기관의 문을 어떻게 지킵니까? 눈으로 대상을 볼 때 거죽으로 드러난 모습이나 특성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눈을 다스리지 않으면 탐욕과 불유쾌함의 바람직하지 않은

나쁜 것들이 마음속에 스며들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눈을 절제하는 수행에 전념하고 눈을 잘 지킵니다.

그런 결과 그는 눈의 절제를 얻습니다.

 귀로 소리를 들을 때, 코로 냄새를 맡을 때, 혀로 맛볼 때, 몸으로 촉감을 느낄 때, 마음으로 현상을

지각할 때, 이 모든 감각 현상에서 거죽으로 드러난 모습이나 특성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귀를, 코를, 혀를, 몸을,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탐욕과 불유쾌함의 바람직하지 않은 나쁜 것들이 마음속에 스며들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감각기관을 절제하는 수행에 전념하고 감각기관을 잘 지킵니다.

그런 결과 그는 감각기관의 절제를 얻습니다.


(먹는 것의 절제)

'먹는 것에 적당량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주의 깊게

이와 같이 살핍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즐거움을 위함도 아니며,

탐닉하기 위함도 아니며, 신체적인 매력이나 꾸미기 위함도 아니며,

다만 이 육신을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함이며, 육신의 고통을 덜고

청정한 삶을 돕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먹는 것에 적당량을

안다'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마음)

어떻게 '깨어있음'에 몰두합니까? 낮 동안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경행하는 것] 앉아 있는 동안 [좌선하는 것] 그의 마음을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맑게 합니다. 밤의 초경에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앉아 있는 동안 

그의 마음을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맑게 합니다. 밤의 중경에 사자가

눕듯이 오른쪽으로 누워 두 발을 가지런히 하고 마음챙김으로 다시 일어날 

것을 생각합니다. 밤의 후경에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앉아 있는 동안 그의 마음을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맑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깨어있음'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벗이여, 우리는 '감각기관의 문을 지키고, 먹는데 적당한 양을 알며,

깨어있음에 몰두할 것이다.'라고 자신을 단련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벗이여,

그대 자신을 단련하여야 합니다."


-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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