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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종교] 에크하르트 - 하느님과 하나 되어

by 하늘의흐름 2017.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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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하나 되어 - 10점
디트마르 미트 엮음, 김순현 옮김/분도출판사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설하는 완덕의 길..


에크하르트의 설교집중 일부만 가려 뽑아,

에크하르트의 사상을 정리한 책이다.


나는 첫번째로 소개된 초탈에 대하여라는 설교가 가장 좋았다.



또한 소유욕에 대한 통찰은, 많은 묵상을 하게 되는 대목이었는데, 

소유욕에서 자유로워지는 경지가 소요유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야고 1,4)되기를 

거듭거듭 갈망하면서 힘차게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속된 제물을 소유하고 그것으로 인해 

하느님을 닳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속된 재물 외에도 완전함을 헛되이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과 

없는 것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하나의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과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은 종류가 같은 것입니다. 


지금 있는 재물로 하여금 나를 규정하도록 내버려두는 한, 

나는 지금 소유하고 있지 못한 것,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까지 얻으려고 발버둥치게 될 것입니다.

 - 366~367p


완전한 길을 가는 것은 쓸데 없는 욕망을 줄이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은 욕망을 절제하는자는 복이 있다는 말과 상통한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의 욕망을 비우자.

 그 빈자리에 하느님이 오셔서 일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근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일하는 자와 

욕망으로부터 시작해서 일하는 자는 

일의 질과 삶의 질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근원으로부터 시작하는 삶이 

격도높고 품위 있으며 질이 좋은 삶이다.


완덕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하나의 길을 반드시 고집할 필요는 없다.



독일어 논고

 1. 초탈에 대하여

 2. 귀인에 대하여, 신적위로의 서


소유욕에 관한 일화

-> 장군과 찻잔

-> 아무리 후회한들


첫째 사례는 한순간의 통찰을 보여주고,

둘째 사례는 부서진 뒤에는 훌훌털고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발췌


여기서 말하는 신비주의는 '뮈에인'myein(눈을 감고 침잠하는 것) 또는 '뮈스테리온mystes(밀의 집단에 입회하는 것)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라, 뮈스테리온mysterion(실체의 비밀)과 관련이 있다. - 72p


<초탈에 대하여>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하는 최고의 일은 나로 하여금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지만 초탈은 하느님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 90p


내가 초탈을 사랑보다 더 높이 치는 둘째 이유는, 사랑이 나로 하여금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반면에, 초탈은 나로 하여금 하느님에게만

민감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 - 90p


예언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 주 하느님게서 내 속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잠잠히 들으리라." (시편 85, 9 사역)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내게 말씀하고 싶으시면, 내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나는 바깥으로 나가지 않겠습니다." - 93p


아비첸나Avicena(이븐시나 Ibn Sina)라고 불리는 한 현자가 말했습니다. "초탈한 마음은 대단히 고귀하다. 초탈한 마음이 보는 것은 언제나 참되다. 초탈한 마음은 언제나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는다. 우리는 초탈한 마음이 명하는 대로 움직이고 그것에게 복종해야 한다." - 94p


초탈한 마음의 기도 제목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 뿐입니다. - 102p




<귀인에 대하여>


행동할 때 세가지를 유념하십시오: 질서 있게 행동하고, 통찰력 있게 행동하고, 지혜롭게 행동하기. 나는 모든 면에서 최상의 것과 일치하는 것을 가리켜 '질서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우리가 좋은 작품들(선행들) 속에서 진리가 생생히 드러나는 것을 감지할 때, 그때를 가리켜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그 세가지가 두루 갖추어질 때, 우리는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 104p



"큰 날개와 긴 깃이 달리고, 울긋불긋한 깃털로 가득한 큰 독수리 한 마리가 순결한 산으로 가서, 가장 높은 나무 곁에 돋은 순을 따 가지고 내려왔다." (에제 17, 3-4 사역)

"나는 고귀한 영혼을 빈들로 데리고 가리라. 거기서 그의 마음에 대고 속삭여 주리라." (호세 2, 16, 사역)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 따르면, 속사람과 새 사람의 첫 단계를 어질고 거룩한 사람들의 모범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외적인 모범과 선한 사람들을 본 받는 것도 물론이고, 하느님의 영광과 신적 지혜의 권고를 찾아나서고 인간을 등지고 하느님에게로 얼굴을 돌리는 단계입니다. 셋째 단계는 어머니를 점점 멀리하고, 어머니의 품에서 점점 더 멀어져, 근심을 여의고, 두려움을 훌훌 벗어 던지는 단계입니다.

 넷째 단계는 점점 성장하여 사랑과 하느님 안에 뿌리를 내리는 단계입니다. 

 다섯째 단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하고 풍부하고 넘쳐 흐르는 지혜 속에 안식하면서 어디서나 평화를 누리는 단계입니다.

 여섯째 단계는 영원하신 하느님을 본떠서,  덧 없고 무상한 삶을 잊고 신적인 형상으로 온전히 변모되는 단계입니다. - 110 ~ 111p


내가 라틴어로 읽어 드린 복음 말씀은 우리말로 이런 뜻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부인이자 처녀인 한 사람이 그분을 모셔 들였다." 

(루카 10,38 사역) - 123p


마벤케브롤 - 본명은 이븐 가비롤(Ibn Gabirol, 1022년경~1070년경) 유다의 황금기 동안 무어인 지배하의 에스파냐에서 활동한 종교적, 세속적 히브리 지파의 뛰어난 인물이었다.-은 <생명의 샘> Fonsvitae 제5권 '고귀하고 거루가신 하느님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형상의 본질을 조성하는 실체이자 완전한 지혜이시며, 가장 순수한 빛이시다." 그의 열매는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순수한 열매다" (잠언 3,14 사역)



-> 성경은 거울이며, 성령에 비추어서 자기의 참 면모를 발견하고 삶 속에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개개인마다 바뀌는 것이 다르다.


'생명체에게는 존재가 곧 삶'이기 때문입니다. - 223p


열매가 꽃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느님도 개개의 피조물 속에 통째로 들어 계십니다. 그분은 만물 속에 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 피조물 안에도 계십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신적인 일은 꽃 속에서 열매를 맺습닏. 그 일은 꽃과 감미로운 향기(열매)를 향해 움직입니다. - 237p


신적 지혜의 엑카르트는 이 구절의 마지막 단어들을 의도적으로 교체하고 그 의미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 228p


하느님의 이름인 '사다이'saday는 넉넉함(충분함)을 뜻하는 단어 '사도스'sados에서 유래하였습니다. - 287p


불변하는 진리의 영원한 연극에 열중하는 사람은 덧없고 천박한 것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며, 그런 것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 300p


확실한 것은 하느님의 존재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머무르신다는 것입니다. - 327p


(성 빅토르의) 후고는 <학습론>Didasalicon 제 4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부지런함과 사랑은 일을 성취하고, 세심함과 깨어있음은 신중함을 낳는다. 일하려면 부지런해야 하고, 성취하려면 사랑해야 하고, 신중하려면 세심해야 하며, 조심하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이 네 덕목은 언어학이라는 의자 또는 가마, 곧 철학이 깔고 앉아 있는 정신을 운반합니다. 두 소년 (열심과 사랑)은 앞에서 (가마를) 받쳐들고, 두 소녀(세심함과 깨어있음)는 뒤에서 (가마를) 받쳐 듭니다. - 338p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 > 요한 4, 9 인용 설교



다섯째, (하느님의 활동이) 새로운 까닭은, 그것이 줄곧 근원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근원 안에서 머무르시면서 활동하시는 한편, 피조물은 자신 안에서가 아니라 자신 바깥에서 움직입니다. - 361p



우리는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야고 1,4) 되기를 거듭거듭 갈망하면서 힘차게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속된 제물을 소유하고 그것으로 인해 하느님을 닳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속된 재물 외에도 완전함을 헛되이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과 없는 것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하나의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과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은 종류가 같은 것입니다. 지금 있는 재물로 하여금 나를 규정하도록 내버려두는 한, 나는 지금 소유하고 있지 못한 것,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까지 얻으려고 발버둥치게 될 것입니다. - 366~3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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