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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역사] 인물로 보는 삼국사

by 하늘의흐름 2017.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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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 우리들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그렇게 잘 알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인가? 이스라엘 사람인가?


한국인이 한국인의 정신을 알지 못하면서

이스라엘의 정신만 배운다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걸까?


그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역사를 잘 알고 이해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실의 눈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역사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발췌


주몽이 졸본에 고구려를 세운 때를 삼국사기는 혁거세 21년 갑신년이라고 기록한다. 하지만 고구려는 신라보다 먼저 형성되었다. - 41p

왕건이 혁명을 일으키자...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어찌할 바를 몰라 평복으로 갈아입고

산속으로 도망쳤으나 곧 부양 백성들에게 살해당하였다. - 166p


"길함과 불길함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이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나라) 주왕은 붉은 새가 나타났어도 망하였고,

노나라는 기린을 얻었어도 쇠하였으며

(은나라) 고종은 장게가 울었어도 중흥을 이루었고,

정공은 두 마리 용이 싸웠으나 창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덕이 요사한 것을 이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별이 떨어진 변괴는 족히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

청컨대 왕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 214p, 김유신이 선덕여왕을 안심시키며 한 말. 운석이 떨어졌을 때

김생 - 통일신라시대의 명필가

 경복궁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에 김생의 필적이 새겨져 있다.


원효대사 -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의상대사 - 원효대사보다 8살 어렸고, 원효와 함께 당나라 유학을 가고자 했다. 원효는 해골물을 마시고 본국으로 귀환했고, 의상대사는 지엄화상을 만나 화엄사상을 배우게 된다.

 의상이 태어나던 시기는 삼국이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패권을 다투던 시기로 원광(圓光)의 만년 활동기이며, 안함(安含)이 귀국하여 밀교활동을 시작한 때이고, 자장이 황룡사를 중심으로 호국사상을 펴던 때였다. - 298p

 지엄은 중국 화엄종의 제2대 교조였다. 그의 제자 법장은 중국 화엄사상을 정리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의상은 이 법장과 함께 수학하였는데 스승인 지엄은 이론적 체계화에 보다 출중했던 법장에게 문지(文持)라는 호를 주었고 이론의 본질적 이해에 더욱 뛰어났던 의상에게 의지(義持)라는 호를 주었다. - 2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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