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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종교] 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대답하다

by 하늘의흐름 2017.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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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전 - 10점
성철.법정 지음/책읽는섬


윤회의 실체를 이야기하는 성철스님.
또 스님이 된 인연을 이야기하는 성철스님.

발췌

법정: 스님의 생활신조라고 할까요, 좌우명 같은 것이 있으면
이번 기회에 말씀해 주십시오.

성철: 그건 비밀인데...

법정: 비밀이라도 조금 공지를 터 주십시오. 왜냐하면 후배들한테는
그게 도움이 됩니다.

성철: 그럼.... 내가 토굴 살던 시절에 박아 놓은 말뚝 하나, 쇠말뚝 하나가
있습니다. 그게 아직까지 그대로 꽂혀 있거든요. 그리고 거기에 패가 하나
붙어 있어요. 거기에 뭐라고 씌어 있느냐 하면...
 '영원한 진리를 위하여 일체를 희생한다.'
 영원한 진리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해 버린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내 생활의 근본 자세입니다. -50p

사실 '다음 생'이란 본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옷을 가지고 그 한계성을
잡아서 옷이 다 떨어지고 새 옷을 갈아입을 그때를 이다음 생이라고 하는데,
그러나 그 사람 자체에서 볼 때는옷 떨어졌다고 이다음 생이라고 할 수 있나요?
본시 과거도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고 항상 그 사람은 그 사람일 뿐이지요.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은 가장 빈천한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노력을 해서 어떻게
하면 모든 상대, 무정물까지도 부천님같이 받들고 부처님같이 모실 수 있는 하는
이것이 세세생생의 원이고, 또 그 이상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56p

나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남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업의
율동이고 메아리입니다. - 법정, 63p


불교의 근본이 흔들리면서 종단에 큰 혼란이 오고 있습니다.
아니, 혼란이 이미 와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볼게요. 참선이라는 것은 견성을 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남의 말 하기는 좀 안 됐습니다만, 요즘 일본에서는
견성을 먼저 하고 참선을 한다고 해요. 지금 미국, 일본에서 그런 식으로
포교를 하고 있어요. 화두를 가르치면서 '무無'라고 말할 줄 알면
견성했다고 하여 그 사람을 '견성단'이라고 써 붙여 놓은 곳에 앉히고는
거기서 참선을 하라고 합니다. 견성하기 위해 참선하는 것인데
견성을 먼저 해가지고서 참선하는 식이니 그 사람이 무슨
견성을 하겠어요? 무슨 공부를 하겠어요?- 67p

법정: 스님의 인경 형성에 영향을 준 서책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성철: 내가 여러 가지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은 선禪입니다.
내가 제일 크게 영향을 받은 조사 스님네의 어록은
<조주록>과 <운문록>입니다. - 72p

법정: 요새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성철: 내 중심으로 말하면 안되지만 <보현행원품>입니다. <보현행원품>이 뭐냐 하면,
모든 존재의 실상 그대로 그 모든 일체가 절대라는 것을 분명하고도 해박하게 설명해 
놓은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 일체가 다 절대이니 거기서 모든 상대를
부처님 같이 섬기자, 스승같이, 부모같이 모시자고, 그래서 자기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 참으로 거룩한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73p


인류 역사를 보면 참으로 훌륭한 분이 많지만, 자기를 회복하고 자아를 복구하고
자아를 개발하는 자아 문제를 처음으로 소개한 분이 부처님이시고, 그 뒤에 와서는
육조 스님이지요.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것, 사바가 본래 정토라는 것, 현실 그대로가
절대라는 것, 그 소식을 가장 해박하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신 어른이 
부처님과 육조 스님이라고 생각합니다. - 74p


불교를 믿는 첫 조건으로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모셔라, 모든 존재를 부모같이 섬겨라,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섬겨라 하는 3대 조건이 있습니다. - 80p

저쪽 상대가 부처님이기 때문에 '불공'이다, 이 말입니다.
남을 도우고 모시는 것이 불공이다. 이 말입니다. - 83p

탁자에 앉아 있는 부처님은 모든 존재가 본래 부처라는 것을
가르쳐서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모시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불공입니다. - 84p


녹차를 좋아하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차를 마신다고 해서 그냥 물 끓여서
차만 홀짝 마시고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을 끓이고 비우고 또 다기를 꺼내서 매만지고
펼치고 마시고 나서 씻고 거두어 들이고 하는
이런 과정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은

차 뿐만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일 자체가

그래야 합니다. - 법정, 87p



첫째, 잠을 적게 잔다. 세 시간 이상 더 자면 그건 수도인이 아니지요.

둘째, 말하지 말라. 말할 때는 화두가 없으니 좋은 말이든 궂은 말이든 남과

말하지 말라. 공부하는 사람끼리는 싸움하는 사람같이 하라고 합니다.

셋째, 문자를 보지 말라. 부처님 경도 보지말고 조사어록도 보지 말고, 신문

잡지는 말할 것도 없죠. ..(중략)

넷째, 과식하지 말고 간식하지 말라.

다섯째, 돌아다니지 말라. 해제하면 모두들 제트기 같이 달아나는데, 그러지

말란 말입니다. - 93p, 성철스님의 5계


남북 분단은 역사적 비극이죠. 조그만 땅덩이에 같은 민족이

선을 그어 놓고 적대적으로 산다는 건 큰 비극입니다. 우리가 그런 것도 아니고

국제 정세에 의해 그렇게 되었단 말이에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국력을 배양해서 아주

이상적인 복지 사회, 복지 국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누가 보든지 이상적인

복지 국가 대한민국을 만들어서 '거기 가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에요. 심지어 북쪽 사람들도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이념도 무엇도 필요 없습니다. 누구나 행복이 삶의 근본입니다. 우리가

낙원을 만들어 놓으면 이상적인 사회, 이상적인 나라로 합해지지 않을까요?

- 99p, 통일에 대한 성철스님의 생각


학문의 근본 목적은 인격 양성에 있지

기술 습득에 있지 않습니다. - 107p


가야산 홍류동 입구 - 해인성지- 성철스님의 글



유교는 공자님이 중국의 삼경이나 육경을 많이 외워서 그 문자에 의지해서

세운 것이고, 예수교는 예수가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서 성경에 의지하여 세웠으니

절대신의 계시가 그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역사적으로 2500년 전에

인도에서 시타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새벽별을 보고 확철대오하여 바른 깨달음을

이룬 데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니 불교는 만은 지식을 얻거나 절대신의 게시에

의지해서 세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의 자성, 즉 일체만법의 자성을

바로 깨쳐서 부처가 되었고 바로 거기서 불교가 출발하고 있는 것이니,

이것이 불교가 다른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 117p, 불교의 특징


<팔만대장경> 속의 부처님 법문 가운데도 방편의 가설과 실다운 실담이 있습니다.

방편의 가설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실제의 근본법을 아무리 소개해도 중생이

이해를 못할 수도 있습니다. 중생이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경우에 따라

방편으로써, 거짓말로써, 저쪽 어디 다른 거승로 화제를 돌려서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여 중생이 그 말을 듣고서 차츰차츰 마음이 깨이면

나중에는 방편의 가설을 버리고 정신의 실담을 얘기해 주어도 이제는 이해를 잘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한 가지 에를 들어 말해 보면 당장 알 것입니다.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그에 앞서 삼승십이분교를 설법하였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거짓이었다고, 방편의 가설이라고 실토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실지로 일승을

설법하고 싶으셨지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고 일승의 <화엄경>을

대중들에게 설법하였지만 그것을 누구도 못 알아듣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삼승으로 물러나서 방편으로, 거짓말로 설법을 많이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어요.

- 141p, 팔만대장경의 방편의 가설과 실다운 실담


부처님이 처음에 자기 할 말씀 다 해 놓고 보니 중생이 그걸 못 알아듣습니다.

여기저기 가서 남산 검불 더미 북산 검불더미들을 모아서 방편가설을 한참

얘기해 놓으니, 그때야 중생들이 조금씩 지헤가 밝아져서 어느 정도 이해가

서는 것이었습니다. 이해가 서고 나니까 <법화경> 끝머리에 가서는, 그전에

말한 것은 전부가 거짓말이다, 내가 거짓말을 했는데, 거짓말을 한 것은 너희들

지혜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실토하신 것입니다. 결국 가서는 내 거짓말에

의지해서 너희의 지혜가 컸으니만치 내가 거짓말한 이것이 해가 되는 게 무엇이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니 만치 나를 허물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부처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더라는 것입니다. 방편설과 실담설 가지고 구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 144p, 법화경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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