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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종교] 도교의 신과 신선이야기

by 하늘의흐름 2017.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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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의 신과 신선 이야기 - 10점
구보 노리타다 지음, 이정환 옮김/뿌리와이파리



명판도장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알았다.

도교에도 분파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정일교보다는 전진교가 마음에 들었고,

여기에는 안나왔지만, 구겸지가 창시했던 신천사도도 괜찮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명맥이 어떻게 된 것인지 찾을 수가 없다고 하니

이상할 뿐이다.


그리고 의외로 풍수지리에 대한 정보가 잘 설명되어 있어서 좋았다.

아주 자세하게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개괄설명을 잘 해두었다.

그래서 해당부분만 발췌하여 두었다.





발췌


현존하는 도교 종파는 전진교와 정일교(천사도) 두 파 뿐으로 전쟁 전에 있었던 정명충효도, 상청파(모산파), 무당도 등은 모두 정일교에 포함되었으며 분파는 83파가 있다고 했다. 1942년 당시 140여파 이상의 분파가 있었다니까 상당히 감소한 것이다. 내가 가장 마음에 걸렸던 점은 세계적인 문화재라고 말해도 지나치치 않은 명판도장의 존재 여부였는데 아직 존재한다는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나중에 본당격인 삼청각을 안내받았는데, 삼청각 한쪽 구석에 설치된 서고에 든 것이 명판도장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전에 보았던 것에 비해 분량이 너무 적어 궁금하게 여겼는데, 아마다 1923년부터 4년간 상해 상무인서관에서 복간한 이른바 상해식 명판도장 인듯했다. 나중에 진품은 북경도서관으로 옮겨졌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도장이란 불교의 대장경을 본떠 편집한 도교의 모든 경전으로 현존하는 것은 모두 5,485권이다.

-21~22p



전진교 도사들이 지켜야 할 규정이나 마음가짐, 분파의 이름, 규칙을 어겼을 때의 벌칙 등을 기록해놓은 청규는 지금도 지켜진다고 하니 관내에서 그들의 샐황이나 기거는 꽤 엄하다고 할 수 있다. - 23p


관성제군각세진경, 문창제군음즐문이 음각되어 있다. 이 두 권은 유명한 권선서다. - 25~26p



전진교의 도사가 계戒를 받을 때 평생 동안 지켜야 할 경전으로 받는 것이 <태상감응편>이기 때문이다. -61p


도교는 종교고 도가는 철학이나 사상이기 때문에 역시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63p


도교의 주요 목적이 불로장생에 있는 이상, 이 부문은 특히 중요시 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양생술이나 치병법, 약제 등이 포함된다. 치병법에는 약을 사용하거나 주문을 외거나 부적을 복용하게 하는 방법 등이 있다. 약재로는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기록된 대부분의 약재가 사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양생술에 대해서만 간단히 소개하기로 한다. 나는 전부터 양생술을 벽곡, 복이, 조식, 도인, 방중의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생각해왔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이 분류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또, 이 같은 양생술은 원래 모두 <포박자>에서 신선이 되기 위한 수행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 73p


운급칠첨3권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태청경에는 상선, 고선, 대선, 현선, 천선, 진선, 신선, 영선, 지선至仙 등 구선이, 상청경과 옥청경에도 같은 이름의 구진九眞과 구성九聖이 있다." 이것은 옥청이 최상이고 다음이 상청, 최하위가 태청이라는 서열을 나타내기 위해, 그곳의 신선들에게 성, 진, 선이라는 차이를 매긴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백운관에는 없지만, 1942년 당시 삼청각 입구에 옥청성경원시천존玉淸聖境元始天尊은 붙일 만한 이름이 없어 원시元始로, 상청진경영보천존上淸眞境靈寶天尊은 영보靈寶라고 이름 붙였지만 태청선경도덕천존太淸仙境道德天尊에게는 '도덕진언오천道德眞言五千'을 제시했다고 해서 도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노자를 도덕천존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노자를 태청에 적용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132p


- 상원부인은 태상도군의 제자다. 태고 시대에 도의 비법을 얻어 귀태금모, 즉 서왕모에 이은 제2위에 해당하는 여선이다. 그래서 서오아모가 하늘에서 인간계로 내려올 때 대부분은 시녀에게 상원부인을 부르게 하여 동석한다. - 145p


- 왕부인은 정식으로는 태진왕부인이라고 하며 서왕모의 막내딸이다. 절세미녀였는데 16, 17세 대 삼천태상부관사직이 되어 동악태산을 다스리게 되었다. - 146p


한편, 아직 속인의 신분이던 신선 마명생은 화군실和君實이라는 이름으로 고을의 관리로 일하고 있었다. 화군실은 언젠가 도적을 붙잡으려 쫓아갔다가 오히려 부상을 당하여 빈사상태에 이르는 중상을 입었다. 마침 그 곁을 지나가던 왕부인은 화군실의 위태로운 모습을 보고 환약을 주어 목숨을 구해주었다. 화군실이 가능성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한 그녀는 이름을 마명생으로 바꾸게 하고 몇 년 동안 수행을 시킨 뒤 신선 안기생에게 가르침을 받게 했다.안기생으로부터 금액환단金液還丹의 비법을 전수받은 마명생은 수련을 쌓아 신선이 되어서 승천할 수 있었다. - 147p


그는 태일황인이 의술에 해박하다는 말을 듣고 가르침을 청하고자 그를 찾아갔다. 그때 마침 황인은 외출 중이었고 제자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제자에게, 과거 인간은 모두 100세를 넘게 살았는데 후세에는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제자가 시를 읊듯 답했다.

"요즘 사람들이 단명하는 이유는 

모두 자기 자신이 초래한 결과라네.

질병에 걸리기 전에 보양을 하지 않고

중태에 빠졌을 때 적절한 치료를 할 줄 모르니

당연히 가벼운 질병도 무거워지고

일찍 세상을 뜰 수 박에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나중에 참고삼아 읽어보라면서 <천원옥책天元玉冊>이라는 책을 주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태일황인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는데 도중에 태일황인의 친구를 만나 함께 돌아왔다.

-> 이후 그는 책을 읽고 연구하고, 풀과 나무를 찾아오게 하여 직접 맛을 보고 신체의 어느 부분에 영향을 주는지 체크했다. 하루에 70종이상의 독초를 먹기도 했다. 결국엔 약초들을 혼합하여 365종의 약을 고안했다. -> 의술,

어두운 밤의 불편함을 통감하고 불을 피워 사방을 비출 수 있는 기름 성분의 초목을 찾아 등불을 만들고 불을 관리하는 오관을 두었다. 이런 업적으로 그를 염제신농으로 부르게 되었다.

오관야라고도 부른다.

- 152p 참조



주나라 말엽 함양에서 태어난 모몽은 주나라가 갈수록 쇠약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귀곡선생을 따라 장생법을 공부, 서악화산에서 수행한 뒤 기원전 217년에 용을 타고 승천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틈날 때마다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은 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은 그의 증손자인 모영을 가리키는 말이다. - 192p


~ 귀곡선생이라 함은 귀곡자를 말하는 것일까? 원문에서는 북곽의 귀곡선생이라고 나온다고 한다. 그 귀곡자가 맞는 것 같다. 

모몽-나무위키


~ 이외에 손진인과 오진인이란 명칭도 나오는데, 손진인은 천금방의 저자인 손사막을, 오진인은 오도를 말한다. 오도의 경우 속선전에서 등장한다.


하지만 도교와 관련지어 주목되는 부분은 화타가 오금희五禽戱라는 도인법을 고안해냈다는 것이다.  도인법은, 호남성에 위치한 한대의 마왕퇴의 무덤에서 '도인도導引圖'라는 그림이 출토된 후 중국에서는 적어도 기원전 2세기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실행해온 양생술로 얄려져 있다. 화타는 그것을 호랑이虎, 사슴鹿, 곰, 원숭이,새鳥의 다섯가지로 구분하여 독특한 방법을 고안했다. 이 방법은 후세에까지 큰 영향을 끼쳐 지금도 그 일부를 실행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 200p



귀문은 현재 가상학에서 동북쪽 방향을 일컫는 명칭인데 귀신세계의 입구도 의미하기 때문에 기피의 대상이다. - 268p


진정고陳靖姑, 순천성모順天聖母 등으로 불리는 임수부인臨水夫人은 여성들의 난산을 도와주는 신으로 남녀 모두에게 두터운 신앙을 얻고 있다.

또, 복건성 고전현 임수향에 백사동이라는 동굴이 있다. 그곳에는 큰 뱀이 살고 있었는데 부근 사람들은 그 뱀이 뿜어내는 독기 때문에 괴질에 걸리는 등 고통을 받고 있었다. 어느날 붉은옷을 입은 여성이 칼을 들고 나타나 열심히 부근을 수색하더니 마침내 그 뱀을 발견하고 단칼에 베어 죽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마을사람들이 이름을 묻자 자기는 복주 하도에 사는 진창의 딸이라고만 대답하고 갑자기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그녀가 도와주었다는 것을 깨닫고 백사동 위에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그 후 그녀는 임수부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 200~201p


함곡관에 남은 윤희는 도를 수행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체류 중일 때 노군이 설명해준 요결을 36장으로 정리했다. 이것이 후세에 <서승경西昇經>으로 불리게 된 도교경전이다. 그런 한편, 그는 속세의 모든 인연을 끊고 일심으로 수도를 쌓은 결과, 마침내 도의 비결을 터득했다고 판단, 그 생각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는데 그것이 현재의 <관윤자關尹子>다. 이 책을 완성하자 윤희는 마침 노군과 헤어진 지 정확지 1,000일에 해당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약속대로 사천으로 향했다. - 235p


~ 노자를 막았던 그 윤희이다. 이런 뒷이야기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나중에 노자전을 보면 더 자세히 나올까?


명나라의 태조는 도성의 성황신을 최상위에 놓았고 그 이하 부, 주, 현의 순서로 신의 격을 낮추었다. 성조成祖는 , 도성인 경우에는 도성황都城隍으로서 각지의 성황신들의 총수라는 의미로 위령왕으로, 그 이하는 위령공衛靈公, 영우후靈佑候, 현우백顯佑伯으로 봉했는데 이와 같은 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황신은 토지와 고나계를 맺고 있었고 공적이 있었던 사람이 죽은 뒤에 임명된다고 믿어졌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실체가 다르다. 더구나 현세의 지방관처럼 옥황상제나 관제의 명에 의해 승진, 전임, 좌천 등을 당한다고 믿어졌다. 또한 부인도 당연히 있었다. - 255p


~ 공작, 후작, 백작이라는 위계 질서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남작, 자작은 딱히 나와 있지는 않다. 성황신은 성황당에 모셔진 신을 말한다. 이 신은 특이하게도 이승과 저승 둘 다에 관여할 수 있으며, 이승의 행동과 저승의 행동을 모두 감찰한다. 경계를 관리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토지신이 된 장자문이야기.(257~259p 참조) 약간 구약 성경의 출애굽기가 비슷하게 전개되는 부분이 있다. 재앙이 점점 커지면서 자기의 요구를 말하는 부분인데. 

장자문은 신선이 된 이후에 "나는 이 지역의 토지신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줄 생각이다. 나를 위해 사당을 짓도록 해라. 만약 지어주지 않는다면 재앙이 미칠 것이다."

이런식으로 사당을 짓기를 요구한다.  사람들이 거부하자 더 큰 재앙을 내리면서 사당을 지으라고 말하는 것이 출애굽기와 유사하게 느껴졌다.


풍수설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산의 모양이나 위치, 강물의 흐름, 방위, 방향 등에 따라 땅과 집, 무덤의 생김새 등을 보고 길흉을 판단하는, 중국 고대에 발생한 음양설과 오행설에 바탕한 일종의 원시적인 지형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유파는 매우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주장하는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스물네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는 수 많은 명산이나 영산의 정상에는 각각 용신이 있고 그 위치에서 산기슭을 향하여 흐르고 있는 영묘한 지맥이 있다. 그 지맥에는 용신의 기, 즉 용기龍氣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 지맥을 용맥龍脈이라고도 부른다. 용맥이 산기슭부터 평야 쪽으로 들어가는 근처에 가장 좋은 상에 해당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것이 용혈龍穴이다. 

 이처럼 땅의 생김새를 보고 용혈을 찾아내는 사람을 풍수사, 풍수선생, 지리사, 지관 등으로 부르는데 이들은 도교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용혈을 중심으로 집, 무덤 또는 사당 등을 만들면 집안이나 자손, 사당이 번성하게 되는데, 이때 앞쪽이 남쪽을 향하여 열려 있고 동쪽에서 강물이 흘러 들어와야한다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라고 한다.

 용혈의 위치를 나타내는 상징이 먹물로 토지용신, 용신, 오방오토용신五方五土龍神 전후前後(당번唐番) 지주재신地主財神' 등이라고 쓴 붉은 종이거나 금 문자로 새긴 붉은 판이다. '오방오토용신'등으로 쓰는 것은 홍콩과 동남아시아로 한정되어 있다. 이것을, 집은 대청이나 감실 아래의 바닥과 접하는 위치에, 사당은 본존의 아래에 놓는다. 다만, 사당에서는 사정에 따라 다른 장소에 놓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집이나 사당의 중심이 용혈 위에 존재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바닥면과 접하도록 두는 이유는 용신이 토지의 수호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덤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중심에 토지용신의 상징물을 두지 않는다. - 262~263p 용혈과 토지용신


그리고 풍수사를 잘 만나서 신이 된 목동이야기도 있다. 서프라이즈에도 나왔던 거 같은데

광택존왕이란 신이다. 이름은 곽홍복이라고 한다.


( 주인은 풍수사를 냉대했고, 목동이 오히려 풍수사를 잘 대해 주었다 (..중략...)

 "자네는 황제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장래에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 신이 되고 싶은가?"

풍수사의 질문에 목동은 고개를 갸웃거린 뒤에 이렇게 대답했다.

"신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자 풍수사는 목동에게 양친의 유골을 불에 태워 가루로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말했다. 목동이 그렇게 하자 그 가루를 물과 섞어 양 우리 근처에 뿌렸다. 목동이, 양들이 부모님의 유골을 밟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자 이곳이 바로 용혈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말하는 동안 멋진 무덤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풍수사는 이렇게 가르쳐주었다.

"이곳에는 벌들이 모여들 테니 빨리 몸을 피해서 구리 삿갓이 있고 소가 사람 위에 올라타고 물고기가 나무에 올라가 있는 장소에 도착하면 돌 위에 앉아 좌선을 하도록 하게. 그렇게 하면 신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얼마 후 정말로 엄청난 무리의 벌 떼가 모여들어 목동은 즉시 몸을 피했지만 주인집 식구들은 벌에 쏘여 모두 목숨을 잃었다.도망을 치던 목동은 도중에 큰 비를 만났다. 앞을 바라보니 승려가 구리로 만들어진 징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비를 막고 있었고 아이가 물소의 배 밑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고 있었으며 어부가 낚싯줄에 물고기를 매단 채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다. 바로 이곳이라고 생각한 목동은 근처의 바위 위로 올라가 좌선을 했고 신이 되었다.

부근 사람들은 그 신기한 현상에 놀라 남안현에 봉산사를 짓고 목동을 절 안에 모셔 신으로 받들었는데 그 후 국가의 평안과 사람들의 보호를 기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 277~2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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